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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키보드가 갑자기 말을 안 듣는다면, 서랍 속 10년 된 키보드를 꺼내는 게 정답일 수 있을까요?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 황당하고도 반가운 경험이 생각보다 훨씬 인상적이었습니다. 로지텍 키보드가 스페이스바를 연속으로 두세 번씩 눌러대는 바람에, 먼지 쌓인 2012년산 LG 키보드를 급하게 꺼내 들었고, 거기서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습니다.

키보드 채터링, 그게 뭔지도 모르고 당했습니다
로지텍 키보드를 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스페이스바를 한 번 눌렀더니 띄어쓰기가 두 칸, 세 칸씩 생기는 겁니다. 처음엔 제가 손가락을 잘못 짚었나 싶어서 몇 번을 다시 해봤는데, 분명히 한 번만 눌렀는데 입력은 두 번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키보드 채터링(Chattering) 현상입니다. 채터링이란 키 스위치 내부의 접점이 불안정하게 튀면서 하나의 입력이 두 번 이상 인식되는 오작동을 말합니다. 육안으로는 멀쩡해 보여서 더 당혹스러웠습니다.
이 현상은 멤브레인 키보드든 기계식 키보드든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데, 특히 스위치 수명이 다해가거나 내부에 이물질이 끼었을 때 빈도가 높아집니다. 출처: Logitech 공식 지원 페이지에서도 채터링 증상이 확인되면 드라이버 재설치 또는 서비스센터 방문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드라이버 재설치까지 해봤는데 증상이 사라지지 않아서 결국 AS를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AS를 맡기기 전에 제가 직접 해본 자가 진단 방법도 정리해 두겠습니다. 첫째, 메모장을 열고 문제의 키를 천천히 열 번쯤 눌러 실제 입력 횟수를 세어봅니다. 열 번 눌렀는데 열두세 글자가 찍힌다면 채터링이 거의 확실합니다. 둘째, 같은 키보드를 다른 PC나 노트북에 연결해 봅니다. 다른 PC에서도 똑같이 재현되면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키보드 자체의 문제입니다. 셋째, 에어 스프레이로 키캡 틈새의 먼지를 불어내고 다시 테스트합니다. 저는 세 가지를 다 해봤고, 마지막까지 증상이 그대로여서 하드웨어 결함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임시로 쓸 키보드를 찾아야 했는데, 창고를 뒤지다 꺼낸 게 LG LK-P7B 모델이었습니다. 제조 연월이 2012년 2월로 찍혀 있었고, 본체 전면에 LG의 옛 PC 브랜드인 XPION이 크게 박혀 있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10년 넘게 창고에 처박혀 있던 물건이 이렇게 쓸모 있게 등장할 줄은 몰랐으니까요.
- 채터링(Chattering): 키 스위치 접점 불안정으로 인한 다중 입력 오작동
- 외관상 이상이 없어도 내부 스위치 수명 저하로 발생 가능
- 드라이버 재설치 후에도 증상 지속 시 하드웨어 결함으로 판단
- 자가 진단: 메모장 반복 입력 테스트, 다른 PC 연결 테스트, 먼지 제거 후 재확인
- LG LK-P7B: 멤브레인 방식, 2012년 2월 생산, XPION 브랜드 제품


PS/2 포트가 없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LK-P7B를 들고 PC 후면으로 갔는데, 연결 단자를 꽂으려다 멈칫했습니다. PS/2 포트(Port)가 없는 겁니다. PS/2란 1987년 IBM이 도입한 키보드·마우스 전용 직렬 인터페이스 규격으로, 보라색은 키보드, 연두색은 마우스 포트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USB가 보편화되기 전, PC에서 입력 장치를 연결하던 전용 단자입니다. 그런데 요즘 메인보드는 이 규격을 아예 지원하지 않습니다. 인텔과 AMD 최신 플랫폼 기반의 메인보드 대부분이 PS/2 포트를 제거한 지 이미 수 년이 지난 상황입니다.
제 경우엔 순간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손에는 구형 키보드를 들고, 뒤에는 PS/2 포트가 없는 최신 PC가 있으니, 완벽한 세대 충돌이었습니다. 또 창고를 뒤졌는데, 이번엔 정말 기적 같은 물건이 나왔습니다. PS/2 투 USB 변환 젠더(Gender)였습니다. 젠더란 서로 다른 규격의 단자를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소형 변환 어댑터를 말합니다. 로고를 보니 SPIRE 브랜드였고, 뒷면에는 WWW.ESPIRE.CO.KR이라고 깨알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혹시나 하고 접속해봤더니 역시나 없어진 사이트였습니다.
그래도 젠더는 멀쩡히 작동했습니다. PS/2 플러그를 젠더에 꽂고 USB로 PC에 연결했더니 드라이버 설치 없이 바로 인식이 됐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입력 지연이나 키 누락 같은 문제는 전혀 없었습니다. 출처: Intel 공식 메인보드 제품 페이지를 보면 최신 700·800 시리즈 메인보드 스펙 어디에도 PS/2 포트 항목이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술의 단절이 이렇게 체감될 줄은 몰랐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습니다. PS/2-USB 변환 젠더는 겉모양이 비슷해도 두 종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내부에 변환 칩이 들어 있는 능동형(Active) 젠더로, 순수 PS/2 신호만 내보내는 키보드도 USB로 바꿔줍니다. 다른 하나는 배선만 이어주는 수동형(Passive) 젠더로, 키보드 자체가 USB 신호를 낼 수 있어야만 작동합니다. 제가 쓴 SPIRE 젠더는 LK-P7B와 궁합이 맞았지만, 만약 새로 구매하신다면 상품 설명에 능동형 또는 컨버터라고 적힌 제품을 고르는 것이 실패 확률이 낮습니다. 수동형을 샀다가 인식이 안 돼서 다시 사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입니다.
LK-P7B를 실제로 써보니 타건감은 요즘 키보드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멤브레인(Membrane) 방식 특유의 다다닥 거리는 소리, 키압이 일정한 느낌, 그리고 키보드 상단에 줄지어 박힌 단축키들. 인터넷 익스플로러 아이콘이 새겨진 버튼, 재생·정지·볼륨·음소거 버튼까지, 그 시절 PC 환경이 그대로 압축된 물건이었습니다. 멤브레인이란 고무 돔(Rubber Dome) 구조로 키를 눌렀을 때 탄성으로 복원되는 방식으로, 기계식 스위치에 비해 소음이 적고 단가가 낮은 것이 특징입니다. 게임 같은 동시 입력(N-Key Rollover) 환경에는 부적합하지만, 문서 작업 위주의 타이핑에는 이게 오히려 손에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키보드 채터링이 생기면 AS 말고 직접 고칠 수 있나요?
A. 기계식 키보드라면 해당 스위치만 교체하는 방법이 있고, 윤활제를 다시 바르는 것으로 증상이 완화되기도 합니다. 다만 멤브레인 키보드나 로지텍처럼 일체형에 가까운 제품은 내부 접근이 어려워 제가 직접 해보기엔 위험 부담이 있었고, 결국 공식 AS를 택했습니다. 보증 기간이 남아 있다면 무조건 AS가 유리합니다.
Q. AS를 기다리는 동안 채터링을 임시로 막는 방법이 있나요?
A. 채터링 필터 프로그램을 쓰면 같은 키가 아주 짧은 간격으로 두 번 들어올 때 두 번째 입력을 무시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근본 해결은 아니지만 문서 작업 정도는 버틸 수 있습니다. 다만 빠른 연타가 필요한 게임에서는 정상 입력까지 걸러질 수 있으니 임시방편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Q. PS/2 키보드를 요즘 PC에 연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PS/2-USB 변환 젠더를 사용하면 됩니다. 저도 그렇게 해결했는데, 별도 드라이버 없이 바로 인식됐습니다. 단, 전원이 켜진 상태에서 꽂는 핫플러그(Hot Plug)는 PS/2 규격상 권장되지 않으니, 가급적 PC를 끈 뒤에 연결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Q. PS/2-USB 젠더는 아무거나 사도 되나요?
A. 아닙니다. 변환 칩이 든 능동형 젠더와 배선만 이어주는 수동형 젠더가 있는데, 순수 PS/2 키보드는 수동형으로는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품 설명에 능동형, 액티브, 컨버터 같은 표현이 있는지 확인하고 구매하는 것을 권합니다. 가격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Q. 오래된 멤브레인 키보드, 실제로 지금 써도 괜찮나요?
A. 문서 작업이나 일반 타이핑 용도라면 전혀 문제없습니다. 게임처럼 동시 입력이 필요한 환경에서는 멤브레인 특유의 N-Key Rollover 미지원 문제가 걸리지만, 그 외 용도에서는 오히려 키압이 일정하고 손목 피로가 덜하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다만 10년 넘은 제품은 고무 돔이 경화되어 특정 키만 뻑뻑할 수 있으니, 꺼내자마자 전체 키를 한 번씩 눌러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Q. LG XPION 브랜드 키보드는 지금도 구할 수 있나요?
A. XPION은 LG전자가 2000년대 중반까지 운영하던 PC 브랜드로, 현재는 단종된 제품입니다.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간혹 나오기도 하지만, 수급이 불안정하고 상태 편차가 큰 편입니다. 저도 창고에 있던 게 아니었다면 사실상 구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결론
이번 일을 겪으면서 든 생각은 딱 하나입니다. 오래된 주변기기를 쉽게 버리지 말자는 것입니다. PS/2-USB 변환 젠더 하나가 없었다면 2012년산 키보드는 그냥 무용지물이었을 텐데, 그 작은 어댑터 덕분에 멀쩡히 작동했습니다. 기술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지만, 변환 규격 하나만 있으면 예전 장비도 충분히 현역이 될 수 있다는 걸 제 경험으로 확인했습니다.
로지텍 키보드는 AS를 맡겼고, 돌아오더라도 한동안은 LK-P7B를 번갈아 써볼 생각입니다. 그 다다닥 거리는 타건감이 생각보다 손에 잘 맞았고, 무엇보다 그 시절 감성이 새록새록 돋아서 타이핑 자체가 재밌어졌습니다. 혹시 집 어딘가에 PS/2 키보드가 잠들어 있다면, 젠더 하나 구해서 한번 꺼내보시는 것도 꽤 괜찮은 경험이 될 겁니다.